스텐머그컵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2022년 아일랜드 올해의 여성 문학상과 2023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역대 부커상 후보작 가운데 가장 짧은 소설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작품의 배경은 아일랜드의 한 마을입니다.

펄롱이 살던 동네에는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는 막달레나 세탁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오랫동안 아일랜드 정부의 비호 아래 젊은 여성들에 대한 잔혹 행위가 벌어지고 있었지요. 우연히 수녀원을 탈출하려는 한 소녀와 마주친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기까지 그의 마음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치밀하게 그려낸 소설이지요. 배우 킬리언 머피가 직접 주연과 제작을 맡아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석탄 목재상인 빌 펄롱은 동네 사람들과 두루 잘 지내는 성실한 가장입니다. 사랑하는 아내 아일린과 다섯 딸을 부양하고 있지요. 평범한 소시민인 펄롱은 열심히 살아온 덕분에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일린은 펄롱에게 가끔씩 "우리 잘 하고 있지?" 물으며 지금의 안온한 삶을 확인하면서 빚 한 푼 안지고 사는 게 펄롱 덕이라며 감사하게 여기지요. 하지만 펄롱은 평온한 삶에 감사하며 살지만 마음 한편이 공연히 긴장될 때가 많았습니다.

그것은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석탄과 목재를 배달하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닌 펄롱은 운이 없는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실업 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 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고,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창고보다도 추운 집에서 지내며
외투를 입고 자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펄롱은 알고 있습니다.

김겨울 작가는 평범한 소시민이며 그저 딸 다섯 잘 키우는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펄롱이 불의한 일을 알게 된 뒤 마음속 갈등을 극복하고 무언가를 선택하면서, '자기 안에서 좋은 무언가가 나오고 있다'고 말한 부분을 주목했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자신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대목이라며 작품의 배경이 크리스마스라는 점도 짚었지요. 사랑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에 자신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 좋은 것들'을 꺼내어 놓는 이야기라고 작품의 의미를 분석했습니다.

사실 소녀들이 학대받는다는 것은 동네 사람들 대다수가 웬만큼 짐작하는 일이었습니다. 지역사회에 영향력이 큰 수녀원에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침묵을 선택했지요. 펄롱도 소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세탁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이 없었고, 아내 아일린도 "그런 일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펄롱에게 침묵을 강요하지요.

펄롱을 아끼는 가게 여주인도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당신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야. 틀리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 당신은 너무 속이 물러. 그래서 그래"라며 펄롱을 설득합니다. 더 크고 직접적인 위협도 있었지요. "딸들은요. 어떻게 지내요? 둘은 여기에서 음악 수업을 받으면서 꽤 진척이 있다고 들었어요." 수녀원장이 펄롱에게 안부 인사를 건넸지만 원장의 말 속엔 몸을 부르르 떨게 할 만큼 무시무시한 경고가 담겼지요.

그렇다면 과연 어떤 힘이 펄롱의 내면에서 좋은 무언가가 나오게 만들었을까요? 작가는 펄롱이 소중하게 간직한 기억을 통해 펄롱이 어떤 선택을 하는 이유를 따뜻하게 설명합니다. 펄롱의 엄마는 미혼모였고, 미시즈 윌슨이 거두어 보살펴 줬습니다. 펄롱도 미시즈 윌슨 품에서 성장했지요.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 펄롱은 선물로 받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사전까지 찾아가며 읽었고, 맞춤법 대회에서 1등을 합니다. 그러자 미시즈 윌슨은 마치 자기 자식인 양 펄롱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었는데, 펄롱은 그 날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해왔지요.

'그날 종일, 그 뒤로도 얼마간 펄롱은 키가 한 뼘은 자란 기분으로 자기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소중한 존재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돌아다녔다.'

사실 펄롱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받고 서운한 마음에 밖에 나가 눈물을 훔치지요. 표지가 낡은 오래된 책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니. 그래도 펄롱은 다음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크리스마스 캐롤을 끝까지 읽었습니다.

아마 과거의 유령이 나타나 스쿠루지를 어린 시절로 데려가는 장면을 기억했겠죠. 스크루지가 사랑받지 못했던 기억과 놓쳐버린 관계를 회상하며 따뜻했던 한 때를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을 가슴에 담았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펄롱은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스스로 마음 속에서 길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수녀원에서 도망치듯 나오다가 길을 잃은 펄롱에게 한 노인이 이렇게 말하지요.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다네." 처음부터 독자들을 펄롱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게 한 뒤 펄롱과 함께 길을 찾아가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2025 리딩코리아 패널인 안광복 철학교사는 지난 1일 CJB TV 방송 녹화에서 철학자 레비나스를 소환했습니다.

"레비나스라는 철학자가 타인의 얼굴을 바라보라고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타인의 고통을 딱 바라보는 순간 외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 때문에 내 마음 속에서 선한 마음이 올라와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get more info 앞에 불편해 보이는 노인이 서 있다고 할 때 선택은 둘 중에 하나잖아요. 눈을 질끈 감으면서 조는 척하거나 아니면 앉으세요 하고 양보할 수밖에 없어요. 뻔히 보면서 갈 수 있는 사람은 없거든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바로 그런 것 같아요. 내 마음속에 있는 그 선한 마음을, 아무리 그 냉정하고 건조한 사람이라 해도 이렇게 선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는 아주 감동적인 스토리인 것 같아서 학생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습니다."

펄롱은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클레어 키건은 펄롱의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장면을 자세하게 소개합니다. 아내 아일린이 딸들과 함께 케이크를 만드는 모습을 레시피 소개하듯 꼼꼼하게 묘사하지요.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상징입니다. 자신의 선택이 아일린과 딸들이 누리는 안온한 일상을 파괴할게 뻔한데도 그 길을 걸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책입니다.

작가는 이렇게 1985년 당시 아일랜드에서 사는 것이 어떤지, 펄롱의 시선을 통해 말하고 있지요.
펄롱과 아일린은 늘 마음 한 구석에 긴장한 마음이 잔뜩 도사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죠. 그래서 매일 평온한 삶을 확인하고 삶의 안온함을 깨뜨릴지도 모를 사소한 위험을 경계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펄롱은 딸들이 다니는 학교를 운영하는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탈출을 시도하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되고 무언가 불법적인 잔혹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순간부터 독자들은 펄롱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과연 그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펄롱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게 되지요.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2025 리딩코리아의 올해의 책 열두 권에 선정된 작품입니다. 2025년 문화다양성 주간 행사의 도서 콘텐츠로도 선정되어 약자와 소외된 이들에 대한 공감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해줬는데요. 북튜버 김겨울 작가가 추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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